[영화] 피와 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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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것

[영화] 피와 뼈

 

최근 기타노다케시 감독의 영화에 푹 빠져있다.

그가 왜그렇게 일본 영화계의 거장이 되었는지 진정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고나 할까.

아.. 나는 왜 이제야
그의 영화를 보게 되었단 말인가.

물론 피와 뼈는 기타노다케시가
감독한 영화는 아니다

그가 주연한 영화이다,

영화의 내용 상 그가 연출했다면
국내에선 아마 난리가 났을 것이다.

그만큼 영화의 주인공인 김준평을
기타노다케시는 괴물적으로 연기해냈다.

 

 


영화의 시작은 1923년 (다이쇼 12년)인
일제 강점기부터 시작되는데

 

 


제주 출신 김준평은 일찌감치 오사카로 건너가 재일 한국인 1세대가 되어
자신의 삶을 개척해나간다.

 

 


그는 미망인 이영희를 겁탈하여
강제로 결혼하고 하나코와 마사오를 낳는다.
(영화의 화자는 장남인 마사오다.)

 

고독한 미식가가 아니더라도 마츠시게 유타카는 상당히 연기파 배우라서 여기저기 정극 영화에 많이도 출연해왔다.

 

 

2차 세계대전이 발발함과 동시에 김준평의
친한 동생뻘인 신기는 출정을 해야 했고
이때 총각들은 출정 전에 급하게 장가를 가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준평의 혼외자인 하루미와 결혼을 하게 되며
두 사람은 옹서(翁壻) 지간이 된다.

(사실은 이영희를 여자 이상으로 흠모하던 신기)

 

 


전쟁이 클라이막스였을때
준평은 가정을 내팽개치고 집을 나가버리고 가족들은 오래간만에 호시절을 보낸다.

그 행복도 잠시, 1945년 8월15일
천황이 항복 선언을 함과 동시에
전쟁도 막을 내린다.

집을 떠나있던 준평의 가족들도
집으로 돌아오는데 가장인 김준평이
이미 집에 돌아와 있었고
가족들은 겁에 질린다.

 

문제없는 가정 없다지만 집안에 이런 불한당 캐릭터 한사람이라도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실겁니다. 진짜 싫어요...
자신이 반갑지 않은 손님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듯 또다시 행패를 부리는 준평.
영화 시작부터 끝날때까지 준평 일가는 그를 이런 표정으로 자주 쳐다봅니다.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준평의 노동착취

 


준평은 전쟁으로 폐가가 된 옆 집을
무단으로 점거하여 어묵공장을 차린다.

전쟁으로 인하여 모든 것을
1부터 시작할 수 있던 시절이어서일까

아니면 준평의 불도저 같은
삶에 대한 애착 때문일까

그의 어묵 공장은 크게 성공한다.

그가 한창 돈 벌기에
열을 올리고 있을 무렵
그 앞에 한 젊은 사내가 나타나는데

 

극중 다케시 역은 오다기리죠 배우가 열연했는데 잠깐 출연만으로 눈이 맑아지는 기분이 들정도로 미친듯이 잘생겼다

 

 

김준평이 젊은 시절
혼외정사로 낳은 아들인 다케시였다.
(혼외정사로 낳은 자식만 도대체 몇이란 말인가)

이렇게 김준평 일가에
무단으로 침입한 다케시는
사사건건 김준평과 충돌하며
준평의 심기를 건드린다.

한동안 머물다가
신세 지고 떠난다며 인사하며 다케시는
갑자기 준평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고

처자식에게도 얄짤없는 김준평이
버린 자식인 다케시라고 돈을 빌려줄 리 없었다.

 

 


결국 부자지간에 길바닥 싸움까지 벌어지고
준평에게 옥수수 털리게 맞고
영희가 몰래 챙겨준 몇 푼 돈에
쓸쓸히 퇴장하는 다케시 (씁쓸..)


 

생활이 윤택해진 준평이 정식으로 들인 첩, 근데 윤택해졌다고 타인에게 후하게 구는건 절대아님
기요코와 찐연애중인 준평, 짧았던 인생의 봄날

 

 

 

 

 

준평에게 질린 영희는 보란 듯이 식당을 개업한다.

 

 

 


영희는 어린 시절부터
공산당 청년인 찬명을 짝사랑하지만
자본주의 체제 아래
가정을 이루며 살아가기에는
그는 너무도 나약한 인간이었다.

결국 사고를 치고 감방에 들어가는 찬명..

 

 

 

 

어느 날 기요코가 뇌종양으로 쓰러져
몸을 가누지 못하게 되고

준평은 또다시 집에 쳐들어와
가택을 부수며 가족들에게 화풀이를 한다.

(화풀이 대상이 왜 가족들인지 알 수없다만
그를 이해하려고 하면 절대 안됨...
영화가 끝날때까지 그를 이해할 수 없음)

 

 

 

하필이면 집에 있던 하나코가 타깃이 되고
준평의 폭력에 못 이겨 쥐약을 먹는데
운 좋게 살아난다.

 

 

 

이에 분노한 마사오가
누나의 복수를 하겠다며
목욕탕까지 쳐들어가 칼을 휘두르지만
힘 좋은 준평에게 보기 좋게 얻어맞고
병원신세까지 진다.

 

신랑의 친구들이 재판재판 하는 것을 보니 아마도 하나코의 남편 직업은 변호사나 검사인 것 같다.

 

 

하나코는 찬명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 없었지만
준평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결혼을 감행한다.

 

 

 

준평은 어묵공장을 접고
기요코를 극진히 간병한다.

 

뇌졸중 수술로 몰골이 만신창이가 된 기요코
채무자 들들볶아서 돈받고 신이 나버린 준평

 


그리고 사채업에 이상하리만치 집착한다.

 

 

 

시간이 흘러 찬명이 출소하고
하나코의 남편은
찬명에게 알 수 없는 열등의식을 느끼며
하나코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사실 하나코만이 찬명을 동경해왔을뿐
찬명은 하나코를 여동생같은 존재
그 이상도 그 이하로도 여기지 않았던 것 같다.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공산주의 유토피아만이 존재할 뿐.

 

밥도 스스로 못먹는 환자가 어떻게 화장은 곱게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는 노릇..

 

 

기요코를 돌봐주는 것에 점점 지치는 김준평.

기요코를 대신할 내연녀
사다코를 집안에 들이게 되고
사다코에게 집안일과 기요코의 간병을
떠넘김과 동시에
그간 쌓인 욕구를 해결하며
"과연 김준평"다운
일석삼조의 이득을 본다.

 

 

 

 

그는 결국 기요코를 적신 신문지로 눌러 죽인다.

 

 

 

 

마침 마사오가 이 장면을
목격하고 기겁하는데

이때 눈을 마주친 김준평이
한다는 소리가 <편하게 해 주려고>였다.
그의 손은 멈추지 않았고
기요코는 비참한 생을 마감한다.

 

 


막상 이 일을
어머니와 신기 형 마저 덮자고 하니 집안사람들마저
비정상으로 보이는 마사오는
실망감에 집을 떠나 양돈장에서 일을 한다.

 

배에 통증을 느끼는 이영희
평생 가족들 착취해놓고 부인 병원비를 안 내어 줌..(이 장면에선 나도 할 말을 잃어버림)

 


어머니 이영희가
암으로 쓰러진 사실을 안 마사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치료비 문제로 김준평을 찾아간다.

 

 


자존심 다 굽히고 빌어보았지만
애초에 아비라는 작자는
처자식 앞에서도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오는 인간이었다.
두 사람은 말싸움과 몸싸움을 벌이고
각자의 살림살이를 박살 내버린다.

 

매맞는 아내 하나코

 


하나코는 남편에게 계속 폭력을 당하자
동생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해보지만
안타깝게도 마사오 역시
김준평을 닮아가고 있었다.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하나코

 

 


하나코의 장례식이 열리고
그녀에게 지속적인 폭력을 행사하며
죽음으로 내몬 장본인인 남편은
아무렇지 않게 마작을 하고 있다.
이를 지켜보는 마사오를 비롯한
처가 식구들 모두
분노를 억누르고 있던 그때 ,

 

 

 


장례식에 김준평이 나타난다.

 

다들 숙연해지는 이 마당에 오늘만 사는 하나코의 남편.
짧은 쇠몽둥이로 맞아보신분....전 없는데 아파보이네요...

 


그는 시건방지게 행동하는
사위를 두들겨 패고
장례식장을 초토화시킨다.

 

 


그렇게 난동을 피우던 도중
갑작스레 중풍으로 쓰러지게 된 김준평.

 

 


뇌졸중이었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준평에게 그동안 쌓인 울분을 갚아주는 사다코

 


그리고 사다코는 준평의 모든 돈을 챙겨서 자식들과 도망가버린다.

 

 

 

하지만 김준평이 누군가,
이에 굴하지 않고 자신이 돈을 빌려주었던 오야마의 공장에 직접 찾아가
다달이 돈을 받아낸다.

 

김준평이 정말 징그럽게 느껴졌던 부분은 오야마에게 받는 돈이 감질났는지 아니면 채무자로서의 태도가 영 별로였는지 모르지만 아예 오야마에게 받은 어음을 야쿠자에게 팔아버리는 장면을 보았을 때였다.

 


시장에서 팔고 버리는
배추 껍질을 주워 와서 국 끓여먹는 준평,
이제 그에게는 돈이 삶의 이유이자
증명이 되어버렸다.

 

진정한 플라토닉 러브

 


이영희의 병세는 점점 심해지고
거의 매일 찾아오는 신기에게
<자주 오지 않아도 된다,
미안해서이기도 하지만
사실 이런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창피하다>
라는 말을 하며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다.

 

이장면이 조금 신기했다. 재일교포 1세대들의 장례식이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현지에서도 한국식으로 치르는 것이 아주 인상깊었다.

 


결국 이영희가 세상을 떠나고
이 소식을 들은 김준평이 장례식장에
모습을 보이지만 신기를 제외한 가족들 모두
그를 외면해버리고 그 역시 발걸음을 돌린다.

 

영화 첫 등장부터 김치 타령하던 준평은 상당히 김치를 좋아했나보다.

 


아내의 죽음을 본 뒤
자신 역시
삶을 정리해야겠다고 생각한 준평은
신기와 함께 마사오를 찾아간다.

 

작은 포장마차를 운영하며 소시민으로 살아가고 있는 마사오
오랜만에 만나는 부자지간이지만 분위기는 냉랭하다.

 


중간에 신기가 다리 역할해가며
분위기 풀어보려 노력하고
준평도 웬일인지
빚 다 갚아줄 테니 내 밑에서 일 하라
선뜻 손을 내밀지만

 

 


"지금까지 제멋대로 살아왔으니,
죽을 때까지 당신 멋대로 하라."는

답변만을 듣고 돌아온다.

 

 


그리고 준평은
사다코와의 사이에서 낳은 아들인
류이치를 납치하다시피 데려가서는
월북해버린다.

독일제 자동 제판기 5대
자가용 5대
2톤 트럭 5대
세이코 손목시계 100개
의류와 신발
현금 7천만 엔 등
전 재산을 북한에 기부하고서 말이다.

 

 


일생동안 모은 재산을 
북한에 기부하고 가난하게 살다가
1984년 (쇼와 59년)에 세상을 떠난다.
김준평의 인색하고 몰인정한 성격은
북한으로 데려간 류이치에게도
그대로 유전되어서,
류이치는 김준평이 임종하기 직전까지도
죽 한 그릇도 주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결국 김준평은 아들의 방치 아래
낡은 초가집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맞는다.

 

 


 

피와 뼈는
처음부터 끝까지
상당히 그로테스크한 영화였다.


주인공 김준평의 캐릭터가
그리고 그것을 완벽하게 연기해낸
기타노 다케시의 미친 연기력이 말이다.

기타노다케시는
인간 김준평을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이해하고 이 배역을 연기한 것일까, 

영화를 보는 내내 생각이 참 많아졌었다.

감독이기도 하고 배우이기도 한
이분이 과연 한민족의 아픔에 대해
이해하고 배역을 소화한 것일까
궁금해지기도 했다.

언론에 보도되는
한국을 겨냥한 그의 망언들이
거슬리는 부분은 있으나 

그의 절제된 연기력이나
영화를 연출할때의 그만이 가지고 있는
탁월한 미학은 무시하지 못할 부분이다.

그는 거장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