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층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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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9. 16. 생각이 많아질때 남친은 이틀 뒤에 떠날 제주여행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한창 들떠있다. 그런데 난 왜이렇게 우울할까 회사에선 여직원 직군을 못잡아먹어 안달이고 하루하가 그야말로 지옥이다. 그 좆같은 회사 나만 다니는 게 아니라서 남친에게 하소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맛있는 것을 먹어도 크게 맛있지 않고 아름다운 것을 보아도 아름답다고 무척 감탄스럽지가 않다. 감각이 마비되어버린 것 같다. 그럼에도 야근은 하기 싫다, 화장실 한 번 가는 것도 큰 맘 먹고 자리를 뜨는 수준의 업무량을 쳐내고 있는 와중에 야근까지 하면 그야말로 정신병에 걸리고 말 것이다. 퇴근하고는 회사와 집 사이 딱 그 중간 거리에 있는 쇼핑몰에 들러 가을 겨울을 보낼 바지 네 벌을 구매했다. 남친은 추석 연휴를 대비해 한시간 정도 야근을 하고 직장 동..
2021. 9. 15. 탈출 도망치고 싶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 한 달 이상 쉬어본 일이 없다. 나는 계속 일만 했다. 질곡은 많았지만 그걸 이겨내니 승진도 뒤따라 주었고 벌이도 예전보다는 좀 낫다. 나이도 먹을 만큼 먹어서 아슬아슬할 찰나 경기권 변두리에 내 이름으로 된 아파트 하나 마련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지금껏 만나온 남자들 중 날 제대로 사랑했던 남자가 있을까? 내가 순정을 바치고 헌신을 한 게 잘못이었을까 내가 매번 배우는 점 없이 바보 같은 만남만 반복해서 남자 친구가 있는 지금도 하루는 행복하고 하루는 불안한 들쑥날쑥한 기분의 날들을 보내는 것일까 뭐가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난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왜 나와 가치관이 맞고 서로 진심으로 아껴줄 수 있는 사람 하나 찾지 못해서 이 고통..
2021. 9. 14. 오랜만에 오늘은 남친이 백신을 맞는 날이었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백신 맞는 날이 내일인 줄 알고 내일에 촛점을 맞춘 아침 인사 카톡을 보내 놓지 않았겠는가 뭐 어쨌든 남친을 위해 주문한 체온계는 오늘 남친의 집으로 배송이 되었으니 그나마 김이 덜 새서 다행이었다. 요즘 인턴에서 신입사원이 된 직원 일 가르치랴 내 일 처리하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다. 솔직히 좀 예민하다. 돈 벌려면 어쩔 수가 없다. 일 끝나고 필라테스를 다녀오는 길에 첫 직장에서 부사수였던 미진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제대로 일을 하기도 전에 결혼 - 임신 테크를 타더니 퇴사를 하게 되었는데 육아가 안정기에 접어들자 다시 이쪽 업계로 뛰어든 것 같다. 내 기억 속에 남아있는 그대로 여전히 야무진 친구였다. 누군가와 이렇게 반갑게 전화통화를 해보..
2021. 9. 13. 월요일, 어른답게 수많은 감정이 교차했던 하루였다. 청약금을 완납한 지 세 달이 다되어가는데 건설사에서 중도금에 대한 안내나 설명이 없길래 오전부터 알수없는 불안감에 시달려야 했다, 모델하우스 사무실은 전화를 받지 않고 발만 동동 굴렀다. 오후쯤 되었을때 모델하우스 사무실에서 내 부재중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을 해왔고 중도금 집단대출 시기와 옵션계약시기가 언제쯤 계획되어있는지 안내해주었다. (한마디로 아직 멀었는데 나 혼자 호들갑을 떨었던 것이다.) 나의 이런 불안감은 누구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남자 친구조차도. 나 스스로 모든 걸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유명한 사업가 댄 페냐는 이야기한다, 외롭거나 친구가 필요하거든 밖에 나가서 떠돌이 개나 한 마리 데려다 키우라고. 그런데 어디 그게 쉬운가 우리 모두..
2021. 9. 12. 금토일 금요일 분주한 하루를 보냈고 점심도 걸렀다. 다음날이 건강검진하는 날이어서 점심만큼은 챙기려 했는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속도 그다지 좋지 않았고.. 퇴근 무렵, 남자친구가 본인 집에 가서 다음날 건강 검진하러 같이 출발하자고 제안해왔다. 백 프로 내키는 부분은 아니었지만, 나를 무척 보고 싶어 하는 눈치인 데다 요 며칠 노력하는 모습을 외면할 수가 없어서 그러자고 했다. 퇴근하자마자 얼른 2일치의 짐을 싸 두었고 남자 친구가 집 앞에 와있다는 것을 알고는 집을 나섰다. 두 사람 모두 8시 이후로는 고체로 된 무엇도 섭취할 수 없는 처지이기 때문에 일단 급한대로 먼길 달려온 남자 친구 먼저 동네 김밥가게에서 김밥을 두 줄 사 먹였다. 나는 집을 나서기 전 계란 프라이와 사과를 먹었기 때문에 더 이상..
2021. 9. 9. 계속 지켜봐야지 오늘따라 유난히 필라테스 수업은 힘들었고 건물 엘리베이터는 점검 중이라 돌아오는 길은 힘에 부쳤다. 토요일에 건강검진을 앞두고 있어서 저녁을 먹을 수가 없는 입장이다. 너무도 허기지는 판국인데 마침 남자 친구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골프 연습장을 가는 길에 전화를 해온 것인데 내 지금 상황이 어떤지 이야기하니 계란을 삶아서 흰자라도 먹으라고 나름의 처방을 해주었다. 하지만 집에는 엄마표 돼지고기찌개가 있는 상황에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내 위장은 그런 음식(계란 흰자)을 원치 않아-라고 응수하니 갑자기 남자 친구가 "아 그냥 먹어!"라고 짜증 섞인 대답을 돌려주었다. 순간 당황스러워진 나는 지금 짜증 냈냐며 여자 친구가 다이어트 때문에 힘들어하는데 그거 하나 받아주는 게 그렇게 힘든 일이냐며..
ME, MY SELF AND I 많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2021년 9월을 죽도록 힘들었던 달로 기억할지 모르겠다. 나잇대가 직원들이 연달아 코로나 백신 투여를 받기 위해 자리를 비우고 남은 직원들은 빈자리를 메우고, 릴레이식으로 이어지는 백신 휴가에 업무량은 상상초월이다. 예상했던 부분이니 예민해지지 말아야지, 이런 때일수록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야지 마음을 다잡아 보아도 밀려드는 업무량에는 속수무책이다. 점심시간에는 근처에 외근을 나왔던 남자 친구와 점심을 함께 먹었다. 남자 친구의 근무지역과 내 근무지역은 자동차로 약 30분 가량 거리가 있기 때문에 평소에는 흔치 않은 일인데 요즘 남자친구가 왜그러는지 내자신이 어리둥절 할 정도로 다정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다정하려 노력을 하는건지도 모르겠다.) 평소 남자친구의 호일펌 헤어가 ..
2021. 9. 7. 생각많은 밤 남자친구와 만난 지 세 달 가까이 되어간다. 몇 달을 고민하다가 내 맘을 숨길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남자친구의 고백을 이끌어냈다 둘 다 적은 나이는 아니었기 때문에 관계의 진전 또한 빨랐던 것 같다. 최근 드는 생각은 그래도 조금 더 만나보고 사귀어야 했었나 하는 생각이다. 물론 남자친구가 나에게 큰 잘못을 저지르거나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만남을 지속해올수록 꼬리의 꼬리를 무는 의문점들과 워낙 생각이 많은 내 고질적인 성향도 한몫한다고 본다. 사귀기 전부터 남자친구는 자신의 취미인 골프를 함께 하기를 원했다. 그러니 내가 여자친구가 된 뒤로는 더욱더 적극적으로 제안해왔다. 하지만 스포츠보다는 여행을 즐기고 독서나 조용한 유적지 탐방 혹은 갤러리 관람을 좋아하는 내가 그 제안이 반가울 리 없었다. ..